2011/08/14

[米慰安婦決議4周年] なぜ日本人はかくも残虐だったのか



アメリカの慰安婦決議採択(2007)に尽力した人物であるらしい。陸軍学士将校 南カリフォルニア同窓会副会長という肩書きだが、元アメリカ軍人なのか韓国軍人なのかも分からない。韓国系の元アメリカ軍人なのかもしれない(それにしては肩書きが立派過ぎる?)。いろいろ日本に関する情報は頭に入れているらしいが、まず、この人は韓国(自国?)の歴史を学ぶところから始めたい。


慰安婦決議案通過4周年に

連邦下院で日本軍慰安婦決議案が通過されて4年になった。 日本政府はまだ容認さえせず、相変らず事実に基づかない決議案という立場を守っている。

私は決議案通過のために活動した時から、日本がどんな歴史的伝統と背景を持った国だからでこういう残忍な制度を作って施行できたのか気になった。 いくら戦争状況であっても幼い女性たちをあらゆる手段を動員して不法に引っ張ってきて性的奴隷化させた事例はどこの国の戦争史にもないという。 その背景を分析してみれば次のようだ。

最初は女性差別意識だ。 伝統的に男性中心の家父長的社会なので女性の地位は男性より低いのが普遍的だった。しかし特に日本で女性差別が激しかったことは彼らの侍の伝統のためであるようだ。

韓国と中国がヒョ(효)を重視して文治と徳治を強調した反面日本はチュン(충)を重視して武力と力が崇拝なった。 忠誠を強調して見たら家庭ですら仮装を君主のように迎えて服従を強要する意識構造が長い間継続してきた。 家で妻の地位は娘と召使いよりは上だったが子供を産んで生活する道具的地位に留まっていた。

二つ目は生命軽視の風潮だ。 侍文化は死を美化させた。 死を忠誠心の完成だと感じる。 日本軍人の名誉とは死まで戦うことなのでピッチできない事情でも捕虜になって生きて帰るならば顔を持っていることができないと感じた。

三つ目、性に対する倫理意識不足。米国の人類学者ルーズ ベネディクトは<国花(菊)と刃物>(1946)で「日本人は自分欲望の満足を罪悪だと考えない。 彼らは肉体的快楽は良いこと、育成すると思っている」として結婚した男でも家庭外で性的快楽を追求することが非難受けない社会といった。

室町幕府(1338-1573)以来遊女業が一種の職業に定着されたが1945年敗戦するまで公娼制が持続された。

四つ目、集団指向。上部の指示や制度的または、集団的な行為に対しては倫理的判断を止める日本人特有の意識構造を受け継いできたようだ。 非倫理性を問い詰めるつもりはあえてすることができなくただ上部の命令をどれくらい忠実に履行するのかにさらに高い価値を置く伝統が彼らの事故(思考)を固定させたようだ。

ある特派員は、親日派声を聞くフランスのある医師さえ日本の集団指向を理解できないとし「日本人は一人ずつ会えば全部礼儀正しくて教養があるのになぜ二人以上がすることはそのように非理性的かわからない」と話したと伝える。

表面では民主社会で裕福な先進国同じに見える日本だが、伝統的に根深くあった悪い習慣が意識の中にそのまま伝えてきながらまだ彼らは成熟した民主市民になること遠かったという感じだ。 現在もこのようだから植民地や占領地の女性に対する日本軍の認識は牛や馬と同じように人格が欠如した動物水準なので、そういう蛮行を長期間持続したものと思われる。


황근(ファン・クン?)陸軍学士将校 南カリフォルニア同窓会副会長

The Korea Times 2011.7.29

위안부 결의안 통과 4주년에


연방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지 4년이 되었다. 일본정부는 아직도 시인조차 하지 않고 여전히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결의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는 결의안 통과를 위해 활동할 때부터 일본이 어떤 역사적 전통과 배경을 가진 나라이기에 이런 잔인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할 수 있었는가 궁금했다. 아무리 전쟁 상황이라 하더라도 어린 여성들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불법으로 끌고 와서 성노예화 시킨 사례는 어느 나라 전쟁사에도 없다고 한다. 그 배경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여성 차별의식이다. 전통적으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이기에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낮은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특히 일본에서 여성 차별이 심했던 것은 그들의 사무라이 전통 때문인 것 같다.


한국과 중국이 효를 중시하여 문치와 덕치를 강조한 반면에 일본은 충을 중시하여 무력과 힘이 숭상되었다. 충성을 강조하다보니 가정에서조차 가장을 군주처럼 모시며 복종을 강요하는 의식구조가 오랜 동안 이어져왔다. 집안에서 아내의 지위는 딸과 하인보다는 위였으나 아이를 낳고 살림하는 도구적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두 번째는 생명경시 풍조이다. 사무라이 문화는 죽음을 미화시켰다. 죽음을 충
성심의 완성이라고 여긴다. 일본군인의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어서 피치 못 할 사정이라도 포로가 되어 살아 돌아간다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여겼다.


셋째, 성에 대한 윤리의식 부족.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1946)에서 “일본인은 자기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은 좋은 것, 함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라며 결혼한 남자라도 가정 밖에서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비난 받지 않는 사회라고 했다.
무로마치 막부(1338-1573)이래 창기업이 일종의 직업으로 정착 되었는데 1945년 패전하기까지 공창제가 지속 되었다.


넷째, 집단성향. 상부의 지시나 제도적 또는 집단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윤리적 판단을 멈추는 일본인 특유의 의식구조를 이어온 것 같다. 비윤리성을 따질 생각은 감히 할 수가 없고 오직 상부의 명령을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하는가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전통이 그들의 사고를 고정시킨 것 같다.


어느 특파원은 친일파 소리를 듣는 프랑스의 한 의사조차 일본의 집단성향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일본사람은 한명씩 만나면 모두 예의 바르고 교양이 있는데 왜 두 명 이상이 하는 일은 그렇게 비이성적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겉으로는 민주사회이고 부유한 선진국 같아 보이는 일본이지만 전통적으로 뿌리 깊게 내린 폐습이 의식 속에 그대로 전해오면서 아직도 그들은 성숙한 민주시민이 되기 멀었다는 느낌이다. 현재도 이러하니 식민지나 점령지의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인식은 소나 말과 같이 인격이 결여된 동물 수준이어서 그러한 만행을 장기간 지속한 것 같다.




황 근
육군학사장교
남가주동문회 부회장